특선 인터뷰 비앙키 타는 SNS 인플루언서 ‘스포츠봉’ 봉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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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스포츠봉’으로 스포츠 쪽에서 다양한 SNS 활동을 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봉은지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스포츠가 없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온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체육학과를 전공해 비인기종목이지만 플로어볼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동했습니다. 비인기종목은 개인의 삶과 선수생활을 병행해야 하고 선수활동비가 지원되지 않아 개인 비용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오직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는 프라이드 하나만으로 활동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접하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스포츠강사 활동을 했습니다. 여름에는 헬스, 수상스키 등의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겨울에는 스키강사를 하면서 틈나는 시간에는 운동선수로 활동하며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스포츠산업의 현실을 보게 되고, 스포츠 방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세계선수권대회(체코)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하고 스포츠행정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행정가 본업에 충실하면서, 여유시간에는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하며 ‘건강한 삶’의 동기부여가 되기 위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메인으로는 사이클, 스키를 즐겨하고 이외에도 골프, 러닝, 등산, 수영, 당구 등 다양한 스포츠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열심히 강사 활동을 했던 대학 시절 덕에 지금은 ‘만능 스포츠우먼’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스포츠’에 제 성을 합한 ‘스포츠봉’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에너지를 보고 같이 공감하고 정보도 공유하며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면 좋겠습니다.”
▶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던 얘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플로어볼이라는 종목의 국가대표로 활동했었습니다. 플로어볼은 쉽게 말해 아이스하키, 필드하키와 유사하며 경기장 안에서 뛰어다니며 즐기는 운동으로 실내하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다시피 운동선수는 엘리트 종목이라도 최고가 되지 않는다면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더군다나 비인기종목은 국가대표로 능력이 있다 해도 수익이 없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코치나 강사 전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플로어볼이라는 종목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스포츠분야에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미래에도 스포츠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직업으로는 스포츠 활동보다 스포츠산업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지금은 국가기관 체육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안전 분야를 담당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스포츠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컨텐츠 제작, 현장안전점검 등 국고사업으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제 삶에서 스포츠 영역이 전부이니 즐겁기도 합니다.”
▶ 자전거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큰 계기가 있기보다는 처음에는 한강 마실로 바람을 맞으면서 하이브리드 일반자전거를 탄 게 전부였어요. 지인 소개로 로드바이크를 접하게 되었고, 이때만 해도 로드바이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지인들과 먹방하고 예쁜 옷 입고 사진 찍는 이런 부분에서 즐거움을 얻었어요. 그런데 점점 자전거를 알게 되고, 잘 타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지금은 자전거를 통해서 운동을 하고 있네요. 겉으로만 보이는 예쁨보다는 진정으로 자전거를 즐기고 사랑하는 ‘자덕’으로 바뀌고 있더라고요. 자덕이 된 지금에서 돌아보면 저는 열심히 탄다는 말을 못할 정도로 자전거에 푹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더군요. 진짜 대단한 동호인분들도 많으시고요. 자전거는 지금도 알면 알수록 워낙 지식도 많이 필요하고 과학적인 스포츠종목인 것 같습니다. 또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매력적인 종목이에요.”
▶ 자전거에 깊이 빠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팀 활동을 하면서 소속감과 프라이드가 생기면서 자전거 매력에 더 깊이 빠진 것 같아요. 지금은 ‘말로야에이블’ 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비앙키팀’에서 활동했었습니다. 비앙키팀에서 활동하면서 대진인터내셔널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제가 로드바이크에 처음 입문했을 때는 비앙키가 아닌 콜나고를 타다가 비앙키 아리아로 기변을 하면서 비앙키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팀 활동을 하면서 자전거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 또 비앙키 브랜드만에 매력과 민트색깔에 빠지면서 저도 모르게 자전거 활동에 점점 깊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팀 활동으로 단체대회에 참가하고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을 많이 배우게 되었고,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좋은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상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어요. 고맙게도 자전거와 즐겁게 보낸 추억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SNS 사진들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매체가 되면서 팔로워가 늘어났고 지금의 스포츠봉이 만들어 졌지요. 그리고 많은 브랜드 대표님들과 회사를 알게 되고 스폰서십도 맺으며 활동하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책임감도 부여되면서 더 많이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비앙키 하면 비앙키팀 또는 스포츠봉을 떠올려주는 분들이 생기면서 더 즐겁게 자전거활동을 했습니다. 아마도 자전거에 빠지게 된 이유를 정리하자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비앙키팀과 비앙키라는 브랜드가 동기부여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발전을 위해 여성최강 동호인 팀 말로야에이블팀에서 좋은 멤버들과 활동하고 있습니다.
▶ 자전거를 타면서 좋았던 점, 슬펐던 점,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요.
“자전거를 타면서 좋았던 점 하면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비앙키팀에서 활동할 때 대진인터내셔널과 인연을 맺으면서 서포터즈로서 로마 그란폰도에 참가한 경험입니다. 코로나로 3년 동안 해외에 못나간 지금 생각하면 더욱 값진 경험이었어요. 제가 2019년 로마를 다녀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코로나 사태가 일어났거든요. 로마 그란폰도에 참여해 자전거를 들고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캄파놀로 회장님, 유명선수들과의 만찬에 참석했으며, 치폴리니 실물을 보고 기념사진도 찍었으니 라이더라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기회였어요. 참가비 전액을 대진인터내셔널에서 지원해주셔서 정말 편하고 안전하게 다녀왔던 여행이었습니다. 영화로만 보던 베니스도 관광했고요. 제 자전거 인생에서 제일 생각나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고 한다면 전 항상 로마 그란폰도 참여였다고 대답해요. 이렇게 19년도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힘들었던 점은 20년도에 죽을 뻔한 불의의 사고와 제 인스타 계정 해킹 사건이었죠. 자전거 때문에 힘들었던 건 아니지만… 이로 인해 몸이 망가져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쌓아왔던 추억의 사진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사고는 정말 너무나 허무하게 다가오는 거 같아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수상레저(수상스키 및 레저편) 촬영이 있어서 블롭점프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롭점프란 널뛰기처럼 사람이 뛰어내리면 그 무게로 제가 튕겨 올라 떨어지는 건데 생각보다 높게 뜨게 되었고 물에 떨어질 때 수면과 복부가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이로 인해 장파열이 일어나 내출혈로 인해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수술도 안 될 뻔 했는데 정말 운 좋게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고 깨어나 보니 3일 동안 의식이 없었고 양손은 묶여있더군요. 그렇게 건강했던 제가 기도삽관을 통해 기계로 숨을 쉬고 있었어요. 힘든데 목구멍에 기계가 들어있어 말도 못하고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보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가 뭔지 가족 면회도 못했고요. 하루는 어찌나 졸린 지 계속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너무 약해졌을 때였어요 숨쉬기도 답답하고… 잠들면 간호사가 계속 깨웠던 날이 생각납니다. 심박수가 자꾸 내려간다고 깨웠었는데 정말 사람 죽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밖에서 울고 있을 가족들 생각하면서 “나는 강하다” 혼자 리마인드를 엄청했어요.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기 시작했고 호흡기를 떼고 가족들 목소리를 듣는데 울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일반실에서는 못 움직였던 몸을 움직이면서 재활을 시작했고, 인스타로 소통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로 위안을 삼았는데 해킹까지 당했던 거죠. 진짜 이때 생각하면 멘탈이 탈탈 털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강하더라고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재활도 노력했더니 지금은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수술자국을 볼 때마다 예쁜 옷을 입는 게 싫어지고, 수영복은 특히 비키니를 못 입게 되었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관련 스포츠룩도 못 입는다고 생각하니 운동하기가 싫어지고 삶의 에너지가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당당하게 한번 올려보자는 심정으로 운동복 그대로 흉터에 신경 안 쓰고 올렸더니 징그럽다, 안쓰럽다가 아닌, 응원의 메시지와 강한 제 의지를 더 멋지게 봐주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DM이 왔는데 본인도 아파서 개복을 했고 큰상처가 있어서 우울하고 창피했는데 저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어떠한 고통도 웬만하면 이겨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 지금은 어떤 자전거를 타고 있나요?
“지금도 비앙키를 타고 있는데요, 아리아에서 올트레 타블로짜로 기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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