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통 클래식 CB의 반항, 혼다 CB1100RS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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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바이크 붐이 일던 어느 날 홀연히 등장한 혼다 CB1100. 굳이 해먹은 CB의 계보를 설명하지 않아도 거대한 공랭 4기통 엔진의 존재감으로 시선을 끄는 바이크였다. 국내에 소개된 CB1100EX는 그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멋을 잘 살린 모델이었다.
와이어 스포크 휠과 양쪽으로 멋지게 빠져나온 듀얼 머플러, 그리고 보통의 모터사이클보다 한 사이즈 높은 18인치 너비의 타이어. CB1100EX는 클래식 바이크의 멋과 오버리터 네이키드 바이크의 중후한 외모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모델이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에도 클래식 바이크의 외형을 가진 최신모델이 계속 등장했다. 최신 기술로 성능도 준수한 데다, 세련되면서도 구시대의 섬세한 디자인을 녹여놓은 네오 클래식 콘셉트의 모델은 마니아뿐 아니라 모터사이클을 패션 아이템으로 받아들인 대중에게도 어필했다.
연이은 브랜드의 네오 클래식 바이크 출시로 인기가 지속되어 온 지금, 혼다가 기존의 CB1100을 개량한 연식변경 모델을 내놨다. 그리고 거기에 한발자국 더 나아가 RS라는 새로운 모델을 공개했다.
RS는 클래식 바이크 외형을 한 로드 스포츠 바이크로 해석되는데, 과연 첫인상부터 기존의 CB1100EX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포티하다. 흔히 말하는 카페 레이서 스타일과 유사하기도 하다.
핸들바는 기존보다 낮아졌고, 시트 실루엣이 살짝 높아졌으며, 금빛으로 도장된 앞/뒤 서스펜션이 눈에 띈다. 고풍스러운 멋의 와이어 스포크휠 대신 운동성을 높인 캐스팅 휠이 쓰였고, 휠 크기도 보통의 스포츠 바이크처럼 17인치 표준사이즈로 바뀌었다.
브레이크는 296mm 듀얼 디스크와 래디얼 마운트 캘리퍼를 장비해 제동력 컨트롤을 보다 용이하도록 조정했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 120/70/ZR17 뒤 180/55ZR17로 EX에 비하면 훨씬 두터워 보이는 뒤태가 새롭다. 클래식 바이크라기보다는 오래된 스포츠 바이크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에서 오는 승차감의 변화도 상당히 크다.
예리한 핸들링을 위해서 프론트 포크는 1도 경사를 줄였다. 리어 알루미늄 스윙암이 반짝거리고, 뒤 서스펜션은 듀얼 쇽으로 분리형 카트리지 타입으로 변경됐다. 아쉽게도 세부설정 항목으로는 초기하중만 세팅할 수 있다. 이것은 43mm 쇼와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콘셉트를 강조하다 보니 클래식한 면이 많이 사라져서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론트 펜더는 플라스틱 재질이고 리어 펜더는 스틸이다. 원래의 둥그런 모양 대신 날카로운 모양의 방향지시등은 크기가 작지만, LED로 충분히 밝다.
헤드라이트는 겉으로는 원형의 전통적인 모습이지만 하향 2개, 상향 2개의 고휘도 LED 램프가 내장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테일램프까지 모든 등화류가 LED다. 이런 부분에서도 약간 나이 들어 보이던 EX의 인상이 많이 쇄신됐다.
시트도 달라졌다. 말랑하고 푹신한 착석감을 가졌던 EX의 것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확실히 스포츠 바이크같은 인상이 크다. 클래식 바이크답게 안락하게 엉덩이를 감싼다기보다 단단한 차체 위에 앉아있는 감각으로 차체를 적극적으로 조종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신체와 마찰하는 부위는 논슬립 재질로, 이를 지탱해주는 사이드의 가죽 재질이 분리되어 있다. 과감한 주행에도 미끄럽지 않도록 설계한 시트는 RS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혼다가 자랑하는 프렌지리스 연료탱크는 접합부위 자국(웰딩)이 전혀 없으며 주유 캡 또한 탱크 라인을 살렸다. 구형 EX와 비교하면 오래전 CB의 전통적인 모양으로 바뀌어 오너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용량은 16.8리터로 오버리터 배기량을 생각하면 큰 편은 아니다.
처음 CB1100을 접하는 이들이 놀라는 것은 크지 않은 덩치에 불구하고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수치상 차량 중량은 250kg으로 어지간한 대형 투어러 못지않다. 덩치라도 크면 예상을 하겠지만, 작은 덩치로 가늠되지 않는 무게를 일으켜 세우려다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메인 프레임은 고전적인 강철소재 튜브 더블 크래들 프레임이다. 구형에 비하면 엔진 부품과 배기시스템 개선을 통해 무게를 소폭 감량했다고 한다. 특히 배기 사일렌서는 육안으로 봐도 약간 길이가 짧아졌다.
공유랭 4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90마력/7,500rpm 토크는 9kgm/5,500rpm이다. 트랜스미션은 6단 기어까지 있다. 6단은 오버드라이브 성격의 기어다. 감칠맛 나는 저회전 토크로 무장한 CB1100은 고단 기어로 저회전 크루징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6단 2,800rpm으로 시속 100km를 유지할 수 있다.
3,000rpm 부근이 가장 크루징하기 좋은 속도였다. 이 부근에서 스로틀을 당길 때마다 탱크 아래에서 흡기음이 기분 좋게 들려온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매끄러운 것은 아니다. 4,000-5,000rpm 사이에서 핸들 바로 잔 진동이 온다. 본격적인 출력이 나오는 6,000rpm 이상으로 진입하기 전의 골짜기인 셈이다.
6,000rpm부터는 4기통다운 면모가 나온다. 이런 콘셉트의 바이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마치 수퍼스포츠처럼 엔진 회전이 매끈해진다. 하지만 역시 고속에 어울리는 바이크는 아니다. 시속 180km 부근에서 프레임이 휘청이기 시작하고 차체가 다소 불안정해졌다.
클러치 조작이 잦은 시내에서는 부드럽고도 강한 토크를 가진 CB 엔진의 특기가 잘 발휘된다. 서보어시스트 채택으로 클러치의 움직임은 15퍼센트 부드러워졌다. 핸들 바는 낮고 양쪽으로 길이가 짧아져 상체가 살짝 수그러진다. 반면 연료탱크의 존재감이 크지 않기 때문에 탱크에 파묻히는 인상이 없다. 살짝 허리가 수그러지기는 하지만 옛 일본 스포츠 네이키드 바이크 수준으로 힘들지는 않다. 탱크 라인이 낮아 상반신이 자유로운 느낌, 클래식 바이크답게 개방감이 크고 상쾌하다.
EX는 가느다란 타이어로 선회 초기의 민첩함이 큰 즐거움이었으나(대부분 클래식 바이크처럼) RS는 광폭타이어로 안정성이 높아지는 대신 둔한 인상이 크다. 대신 휠 사이즈가 작아져 장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코너링 느낌은 많이 다르다. 앞이 먼저 꺾여 들어가고 뒤는 적당히 휘면서 따라 들어오는 인상이 크다. 차체 전체가 무게감을 살려 가볍게 기울던 EX와는 다르다. 확실히 RS는 스포츠 바이크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메인 프레임이라던지 섀시 전반의 기본적인 물렁함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비약적인 스포츠 성능같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슬리퍼클러치를 장착한 점도 좋은 개량점이다. 갑자기 등장하는 코너에서도 부드럽게 클러치를 놓으면 타이어 슬립없이 변속할 수 있다. 배기량은 크지만 3,000rpm 전후로 저속 토크를 살린 주행을 하다보면 기어를 자주 바꾸게 되는데, 이런 특성을 살려 부드러운 주행감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시승을 했던 날 기온은 한여름 날씨의 영상 35도였다. 대형 공랭 엔진 특성상 달리지 않고서는 냉각이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 덕에 3,000rpm 주변의 1, 2단 기어에서 미세한 스로틀 입력 시 부조현상이 느껴지기도 했다. 스로틀 반응이 무뎌지고 가끔 원하는 대로 가속되지 않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해가 기울면서 기온이 떨어지니 증상이 없어졌다.
이 엔진으로는 2,000-3,000rpm으로 크루징하듯 스포츠 라이딩을 즐기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언제나 여유있는 라이딩을 약속하는 엔진이다. 다른 차량과 비교해도 속도는 충분한데, 대형 4기통 엔진의 ‘토크’ 하나만으로도 스포티하게 달릴 수 있는 여유랄까.
회전수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좌우로 날카롭게 뱅킹하는 스포츠 바이크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높은 페이스 속에서도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스포츠 라이딩은 CB만의 시니어 스포츠라는 기분도 든다. 물 흐르듯 국도를 유랑하며 와인딩하는 재미가 좋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3,000rpm 부근의 저회전 영역이 아니라면 아예 6,000 이상으로 회전수를 끌어올려야 부드럽다. 그 사이의 중간 회전영역에 들어가면 잔진동이 불쾌하다. 고동감을 위해 연출된 진동이라고는 하지만 몇 시간 이상 지속해서 느끼기에는 결코 기분 좋지 않았다.
서스펜션은 나쁘지 않았다. 딱 일반도로에서 쓰기 좋은 세팅이었다. 혼다는 쇼와 듀얼밴딩밸브 포크(SDBV)를 장착해 고속 안정감을 높였다고 발표했다.
앞은 기본적으로 단단하지만 브레이킹 시 미세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만큼 유연하고 반응도 빠르다. 앞 타이어의 접지감을 느끼기 쉽고 굉장히 직관적이다. 정립식 포크 특유의 다이렉트한 느낌을 장점으로 잘 살렸다. 아우터 튜브는 흡사 튜닝 파츠처럼 보이는 은은한 골드컬러가 포인트다.
뒤는 앞과 함께 스포티한 세팅이다. 하지만 스트로크가 짧고 리바운드가 약해 요철에서 통통 튀는 현상이 나타났다. 별도의 리저브탱크가 있는 타입이지만 속도를 높이면 쿠션을 느끼기 힘들고 접지감도 큰 폭으로 희미해져 간다. 고속 코너 주행 시 작게 상하 좌우로 떨리는 채터링도 뒷서스펜션 세팅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시승을 하며 주로 달린 속도는 시속 100km 근처부터 시속 200km까지 다양했다. 요즘 나오는 스포츠 네이키드 바이크는 성능이 워낙 좋아서 시승을 마치고 나면 방풍성능이 뛰어난 스크린을 장착하고 다시 달리고 싶어지는데, CB는 그렇지 않았다. 특유의 즐거움을 주는 특정 회전수와 속도역이 분명히 있었고, 그 부분이 어느 영역인지는 오너 맘대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
연료게이지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급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는데, 익숙해질수록 3,000rpm 달콤한 부분만을 주로 쓰기 때문에 연비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상황에서 리터당 약 20km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유유낙낙 정속주행을 주로 하면 리터당 30km 가까이 기록하기도 한다.
바이크가 작고 품에 쏙 들어오기 때문에 무거운 중량과는 달리 바퀴가 구르면 무척 통제하기 좋고 재미있다. 핸들 폭이 좁아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기도 부담이 없다. 전체적으로 무척 작고 힘 좋은 쇳덩어리 바이크를 타는 느낌으로, 조종하는 즐거움이 있다. 대부분 상황에서는 묵직한 주행 안정감이 탁월하지만, EX에 비해서 한층 향상되었으면 했던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여전히 아쉬웠다.
프론트 브레이크는 래디얼마운트가 되면서 확실히 직관적으로 바뀌었고, 엔진출력 대비 제동력도 충분했다. 리어 브레이크 페달은 형상이 길쭉하고 단단한 느낌으로 미세하게 밟기가 수월하고 조작감이 직접적이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CB의 팬이지만 앞서 CB1100EX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시승했을 때의 감동에 미치지는 못했다. 고전적인 CB의 감각을 현대적으로 많이 융화한 느낌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이목을 끌기 위해 화장을 과하게 한 느낌도 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더 예쁘고, 멋있어진 것은 맞다.
정통클래식을 지향한 EX에 비하면, RS는 네오클래식이라는 명제에 훨씬 잘 부합한다. 골수 마니아의 잇템이 아니라 대중이 사랑할 수 있는 잇템으로 다시 태어났다. RS뿐 아니라 신형 EX 또한 마찬가지로 내/외부적으로 긍정적인 변화점이 많다고 한다. 어떻게 꾸미든 숙성된 CB의 명품 엔진은 여전히 같고, 색깔도 남아있다.
시대의 트렌드나 대중의 요구에 맞게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언가 CB만의 느낌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타기 편한, 언제든지 즐기기 좋은, 여유 있는 4기통’과 같은 여러 수식어를 여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숨 가쁜 지금 시대의 네이키드 바이크와 달리 이것이야말로 CB만의 독특한 스포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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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성진 사진 임성진 류신영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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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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