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GSX-R1000R 시승기, 쉽고 즐겁게, 그리고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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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의 리터클래스 신형 슈퍼바이크 GSX-R1000/R은 달리고, 돌고, 서는(RUN, TURN, STOP) 이륜차의 기본 명제를 충실히 지키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을 돕기 위해 이례적으로 많은 전자장비가 투입되었고 그런 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 또한 환영하는 측면이 크다.
지난 16일, 스즈키가 미디어 대상 프레스 테스트 라이딩 행사를 인제 스피디움 트랙에서 준비해 훌륭한 조건에서 마음껏 테스트할 수 있었다. 트랙테스트 대상인 GSX-R1000/R이 메인이었고, 그 외에 도로에서 테스트할 네이키드 바이크 GSX-S750이나 어드벤처 투어링 바이크 V-STROM 시리즈의 신형 버전도 시승차가 제공됐다.
사실 GSX-R1000은 발매 전 이미 영암 국제서킷에서 선수의 레이스 머신으로 짧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으나, 바이크는 순정 상태가 아니었고 궂은 날씨 등 주행 여건이 아쉬웠다. 허나 이날 인제 트랙의 노면은 무척 달구어져 있었고 순정 세미슬릭 스포츠 타이어는 좋은 컨디션을 갖추고 있어 충분한 시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코스-인 스타트는 스페셜 무기인 GSX-R1000R이었다. 기자에게 배정된 모델은 요시무라 슬립온 시스템이 적용되어 약간의 출력 상승이 있었다. 풀시스템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자극적인 고회전에서의 하이엔드 파워를 좀 더 끌어냈다.
레이스 머신에 장착되어 있던 슬릭타이어보다 타이어 온도는 빨리 올라갔다. 이날은 풀코스가 오픈되어 테크니컬 코스를 마음껏 달릴 수 있었는데, 한 바퀴만 달렸는데도 이미 타이어는 200마력 이상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고속 코너를 빠져나오는 메인 스트레이트 코스에서 디지털 계기반에는 약 270km/h 가까운 숫자가 표시되었다. 이 숫자는 아무래도 퀵 시프터의 덕이 컸다. 노련한 테크닉이 없이도 쉽게 변속 시간을 줄였고 여유 있게 브레이킹 직전까지 풀스로틀할 수 있었다.
파워는 대부분 4기통 고출력 엔진이 그렇지만 고회전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그중에서 이번 R1000의 핵심 포인트가 저회전부터 꾸준히 고회전까지 높은 토크와 파워를 내게 되었다는 점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기본적인 형식 성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반면 분명한 것은 200마력을 마크하는 타사 경쟁모델에 비하면 약 5,000rpm부터 쏟아지는 중간 영역대의 토크의 분포가 무척 치밀하다는 것이다. 즉, 이는 마치 9,000rpm 정도에 바늘을 고정해 둘 때의 스로틀 반응이었다. 그때부터도 본격적으로 머신을 풀 가속할 수 있게 했고, 항상 가속에 대비할 수 있는 영역대이기도 했다.
내리막 감속구간이 많은 이 트랙에서의 테스트는 아주 솔직한 결과를 내어준다. 특히 1번 코너를 바라보며 약 170km/h 정도로 브레이크를 걸며 진입하면 노면의 고저차는 물론 앞 서스펜션에 하중이 쏟아지기 때문에 바이크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노면 폭은 무척 넓어 부담이 없지만 그래도 뱅킹을 꽤해야 하는 구간이다.
그 상태로도 흔들림이 없는 것은 별체식 챔버를 단 BFF(밸런스 프리 포크)의 영향이 컸다. 훨씬 많은 양의 댐핑이 차체를 받아주고 있었으며 어지간한 급작스러운 움직임도 여기에서 다 처리해주고 있었다. 몇몇 미숙한 브레이킹 실수에도 거의 주행 라인의 변화 없이 페이스를 유지하고 갈 수 있던 것은 대용량 포크의 압도적인 안정감이 분명히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서스펜션의 스펙 차이는 R1000 스탠다드와 R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한데, 이는 사정없이 위 아래로 오르고 쏟아내려 지는 S자 테크니컬 코스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시케인에서 스로틀을 짧고 강하게 불어 트랙션을 시작하는 찰나의 안정감이 무척 좋기 때문에, 언제든지 원할 때 접지력을 늘리는 용도로도 쓰기 좋고, 스로틀 조작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부드럽게 타이어를 눌러준다.
보통 이런 고사양의 서스펜션은 일반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테크닉이 높은 선수일수록 성능을 100퍼센트 가깝게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 아래의 일반 스포츠 라이더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차이는 있다.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은 역시 명불허전. 하지만 스즈키의 세팅 또한 그대로다. 초기 작동감이 다소 밋밋하고 마치 4기통 엔진처럼 힘을 더해갈수록 원래의 파워가 나오는 느낌이다. 한계 제동력에는 큰 불만이 없었지만(금세 적응하기 마련이기에) 날카로운 작동감을 좋아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다양한 전자장비로 컴퓨터인지 바이크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능이 많지만, 모든 기능을 다 활용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파워 모드를 바꾸는 A모드부터 C모드까지의 차이는 체감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민감하다던 의외로 A모드는 의외로 부드럽고도 친화적이다. 연출의 요소가 거의 없고, 솔직하게 100퍼센트 본래 엔진 성능의 직관적인 느낌만을 보존했을 뿐, ECU를 통해 날카로운 토크를 짜릿하게 느끼게 하려는 둥의 트릭이 전혀 없다. 그 아래 모드는 최대출력은 같으나 스로틀 반응성에서 조금 더 둔감한 설정이다.
트랙션컨트롤은 1~10단계로 매우 다양하다. 트랙에서는 1~3단계를 사용하라고 권고했지만 나는 시험차 스타트를 5단계로, 그리고 어느 정도 적응 후 3단계, 곧 1단계로 줄여 나가봤다. 3단계까지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1단계로 바꾸자 스로틀 조작을 급하게 하면 미세한 슬립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스로틀을 풀 정도는 아니고 현재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어느 정도 받아주고 있는 상황인가 알 만큼의 정도다.
계기반 디자인은 간결하고 직관적이다. 디지털로 표시된 타코미터(엔진 회전계)는 얼핏 보기에 멋지기는 하지만 간혹 눈에 잘 안들어온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것은 달리면서도 비교적 시야에 잘 들어왔다. R은 검정색 배경, 노멀은 흰 배경이다. 둘 다 시인성에는 문제가 없었고 취향이라면 R의 검정 배경이 더 좋았다. 현재 선택된 엔진 모드 셀렉터나 TC단계, 기어 포지션, 속도나 트립미터, 연비 등 레이스트랙이 아니라 일반도로 라이딩을 충분히 고려한 다양한 정보가 한눈에 표시된다. 심지어 연료계도 있다.
스즈키는 VVT(가변 밸브 타이밍)기술이나 IMU(관성 측정장치)의 도입으로 쉽게 탈 수 있는 강한 슈퍼바이크를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물론 이견은 없다. 트랙에서 실제로 200마력이 넘는(크랭크 기준 출력) 바이크를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이렇게 쉽고 친근하게 다루기가 어렵기가 때문이다.
만약 10,000rpm이 넘어야 갑자기 고출력이 쏟아지는 2스트로크같은 머신이었다면, 아니면 트랙션 컨트롤이 10단계가 아니라 단순히 ON/OFF 개념이었다면, 혹은 그들이 자랑하는 IMU기반의 코너링 ABS가 아니라 일반 ABS였다면 어땠을까 하고도 생각해봤다. 결론은 202마력의 고성능 패키지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즐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그러자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슈퍼바이크를 즐기는 것은 라이더의 기초 체력은 물론이고 상당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선수라면 그런 것을 독파하면서 자신만의 머신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그저 레저나 취미인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기계에 의해 휘둘리는 과한 위화감 없이 압도적인 파워의 슈퍼바이크 충분히 즐길수 있도록 이만큼 다독여 놓았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양산형 슈퍼바이크 방향성 면에서도 옳다고 본다.
일반 도로에서 R1000 노멀버전을 탔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튼튼한 가죽 슈트를 입고 트랙에서 앞만 보며 달릴 때와는 달리, 누구나와 함께 쓰는 도로에서는 주변의 교통상황이나 노면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대부분 단지 라이딩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마련이다. 노멀 R1000만 해도 절대적인 퍼포먼스야 R버전에 미치지 못하지만, ‘쉽게 타는 슈퍼바이크’ 성향은 그대로였다. 일반도로에서의 R1000은 원하면 가속하고, 원하면 감속하며, 부드럽게 기울고 일어선다. ‘요즘 슈퍼바이크’다운 면이다.
원터치로 간편하게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고, rpm 보정을 받으며 부드럽게 출발하면서 이미 충분한 토크를 손에 쥐고 있다. 이제 막 땅에서 발을 뗀 3,000rpm부터 이미 리터급 슈퍼바이크라는 느낌이 확 온다. 브레이크는 내리꽂이기보다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반응해서 몸이 앞뒤로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은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어차피 감속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으나 과정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이 부분은 사람마다 취향이 갈릴 터다.
레이싱트랙과 일반 도로를 오가는 시승을 퍼포먼스 사양인 GSX-R1000R과 노멀 사양까지 모두 테스트해보고 나자 스즈키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높은 파워를 잘 잠재워놓는 것은 메이커의 기술력과 오랜 연마가 비롯되어야만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제 막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어설픔보다는 노련한 면을 더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을 단지 전자장비의 혜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메이커는 0/1 신호를 주는 전자장비 없이도 오랜 시간 바이크의 성격을 두고 순하고 부드럽게, 혹은 날카롭고 난폭하게 얼마든지 기획하고 조율해왔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성향을 사용자가 매 순간 버튼을 통해,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상황을 보면서 조절할 수 있고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이런 점은 날 것 같았던 R1000의 과거 대신 온화한 슈퍼바이크 시대의 변화와 맥을 함께한다.
‘4기통 자부심’이 강한 GSX-R 시리즈의 최전방에 있는 GSX-R1000/R은 현대적인 슈퍼바이크다. 누구나 조련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지금의 R1000을 통해 현 시대의 스포츠 라이더에게 바라는 스즈키의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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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성진 사진 장낙규 류신영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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