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HONDA CBR50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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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볕과 서늘한 공기가 공존하는 가을이다. 이럴 때면 살랑살랑 바람을 쐬며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자면 빡빡한 스케줄을 피해 주말을 이용하거나 소중한 휴가를 써 마음먹고 드라이브 계획을 짜두는 것이 좋다. 어렵게 마련한 시간을 요긴하게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 없이 홀가분히 떠나는 여행이 가장 여행답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그건 시간이 남아도는 사장님들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만약 시간을 굳이 만들지 않고도 매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루 간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단번에 날아갈 텐데 말이다. 그렇게 수시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만 있다면 반복되는 일상에도 활력이 가득 찰 것이다. 별 다른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 자유. 혼다가 추구하는 행복한 일탈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게 비록 스포츠 머신일지라도 말이다.
혼다 스포츠 바이크 라인을 대표하는 CBR 시리즈는 전 세계 어느 브랜드보다도 다양화 된 배기량별 라인업을 제공한다. 가장 막내인 CBR125R과 바로 윗 급인 CBR250R은 단기통, 즉 1실린더. 그리고 방금 시승을 마치고 온 CBR500R은 병렬 2기통이다. 그 위의 CBR600RR과 CBR1000RR은 본격적인 레이스 머신으로 투입되는 병렬 4기통 고출력 모델이다. 눈치 챘겠지만 CBR500R은 스포츠 라인 중 정 중앙에 위치하는 미들 클래스로써, 엔트리급과 레이스급을 잇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유연한 모델이다.
익스테리어는 윗 급인 CBR1000RR의 체인지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실체가 공개되기 전에는 CBR125R, CBR250R과 같은 역삼각형 형상의 프론트 뷰를 가진 패밀리 룩을 따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판이었다. 윗 급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끌어오기 위해 레이서 레플리카 머신 중 최대배기량인 CBR1000RR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좌/우 분할형 헤드라이트는 상/하향이 각각 별개로 작동된다. 광량은 충분한 편이지만 시야각이 넓지는 않다. 본래는 맹수의 눈을 형상화 한 이전 세대 CBR1000RR의 라인-빔 헤드램프를 구성한 것이 원조다. CBR500R의 헤드라이트는 매서운 이미지 보다는 총명한 모범생 같은 이미지에 더 가깝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스포츠 머신 본연의 낮은 자세보다는 좀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핸들 포지션 역시 극단적으로 상체를 수그리지 않는 자세로, 일반적으로 레이서 레플리카 바이크와 네이키드 바이크 중간쯤인 F(Foresight) 포지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트고도 높지 않다. 신장 170cm의 기자가 라이딩 포지션을 취했을 경우 편안히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다. 시트도 스포츠 바이크치고 평평하며 쿠션감도 부족하지 않다. 탱크는 폭이 좁아 니그립하기에 수월하고 높게 솟은 핸들 포지션과 어울려 신장이 크던 작던 개의치 않고 넉넉한 감각으로 쾌적한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다. 리어 시트는 본격적인 투어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패신저(동승자)를 위한 큼지막한 그랩바와 함께 근거리 투어정도는 유유자적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계기반은 풀 디지털 방식이다. rpm을 표시하는 타코미터와 속도를 표시하는 스피드미터 등 각종 주행에 필요한 정보가 디지털 액정에 표시되며 시인성은 나쁘지 않다. 스로틀 그립이나 클러치/브레이크 레버 외 각종 버튼류는 고급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작동감이 확실해 만족스럽다. 스텝은 두터운 고무발판이 장착돼 있어 장시간 주행을 감행해도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진동이 거의 없다. 윈드 스크린은 차체 사이즈에 적절히 어울리는 크기를 가졌지만 워낙 상체가 일어서는 업-라이트 포지션이라 주행풍을 전부 막기는 어렵다.
엔진은 471cc 수냉 병렬 2기통이다. 50마력의 출력으로 고성능이라 할 수는 없지만 4.5kgm의 두터운 토크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즐길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특히 최고출력이 발휘되는 8,000rpm 부근에서는 레이서 레플리카 못지않은 매끄러운 회전질감을 보인다. 출발시 약 3,000rpm을 지나면서 두툼한 토크가 느껴지는데, 이 정도 회전수에서 고단 기어로 느긋하게 주행하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편안한 자세로 스포츠 투어링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거의 네이키드 바이크 비슷한 자세에 풀 카울링 바이크를 탄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형제인 500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싱글 디스크를 장비해 경량을 자랑한다. 스포츠 바이크에 싱글디스크를 채용했다는 점이 아리송할 수 있겠지만 실제 제동력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 혼다가 특히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시스템의 조율이다. 같은 사양의 디스크와 캘리퍼를 사용해도 타사와 차별되는 세팅으로 한 클래스 위의 작동감과 제동력을 기발하게 확보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혼다다. CBR500R도 다름없다. 윗 급 레이서 레플리카와 비교해도 큰 부족함이 없다. 물론 서킷을 들어가면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린 특성 또한 무척 경쾌하다. 와인딩 코스에 들어서기 전까지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는 이렇다. 라이딩 포지션이 높고 서스펜션이 말랑말랑한 편이라 기울이는 과정을 한 템포 부드럽게 해야 본래 이 바이크의 특성대로 움직여 줄 거란 생각. 기계적 특성은 생각한대로가 맞지만 연속 코너에서 왼쪽, 오른쪽 스텝이 닿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이 생각이상으로 짧다. 움직임도 간결해 마치 중간과정이 생략된 듯 한 기분마저 든다.
묘사하자면 연료 탱크 아래로 묵직한 무게중심을 따라 오뚜기처럼 움직이는 느낌이란 거다. 따라서 급한 상황에서도 가볍게 휘두르기 수월하다. 고속 주행 중 전방에 들이닥친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도 편하다. 도로 위의 오물, 장애물, 끼어드는 차량 등 우리가 라이딩 중 겪는 위험천만한 상황은 수도 없이 많다.
스포츠 라이딩의 핸들링 퍼포먼스를 배제하고라도 이러한 조작의 간결함은 안전상 무척 중요한 장점 중 하나다. 비록 최상급 파츠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주행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대단하다. 역시 혼다다, 싶다. 파츠에 대한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그런 요소는 착한 가격으로 충분히 보상된다.
스텝이 높지 않아 뱅킹 각이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퓨어 스포츠 머신은 아니기에 만족할 만하지만 차체 한계가 생각 외로 높아 낮은 스텝 위치가 아쉬운 감이 있다. 타이어는 스트리트용 스포츠 타입이지만 이 역시 보기보다 접지력이 훌륭하다. 마일리지도 높아 보이지만 최소한 컨트롤 실수가 아닌 이상 타이어 그립 부족을 느낄만한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엔진 출력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순정타이어외의 하이그립 타이어를 굳이 장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이 또한 일반 도로에 국한 된 얘기다.
스포츠 라이딩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두루 써먹기에도 좋다. 특히 시내에서는 묵직한 토크를 만끽하며 시원하게 차들을 앞지를 수 있다. 배기음이 정숙해 정차 시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좋지만 8,000rpm 이상을 내며 시원스레 가속하면 호쾌하게 치솟는 엔진음을 즐길 수 있다. 병렬 2기통 엔진인 것 치고 높은 rpm에서의 경쾌한 음색이 마음을 한층 들뜨게 하는 것이다. 진동은 딱 기분 좋은 수준까지다. 쾌적한 라이딩을 위해 스포티하게 달리더라도 불쾌한 잔진동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게끔 설계된 점도 좋다.
또 하나의 장기는 크루징이다. 흔히 CBR500R과 같은 F(Foresight) 포지션을 가진 모델은 범용성을 또 하나의 특성으로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정속주행으로 크루징할 때의 상황도 계산되어 있다. 국도 주행시 법정 한계 속도인 시속 80km/h로 달릴 때 톱기어 6단을 넣으면 3,000rpm 전후로 느긋하게 달릴 수 있다. 낮게 깔리는 엔진음을 배경음악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포지션이 높아 주변 시야가 아무래도 눈에 시원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풀 카울링 덕에 온몸으로 직접 들이닥치는 주행풍도 대부분 막아준다. 참 다재다능한 바이크다.
메이커가 설정한 세그먼트를 염두해 CBR500R을 굳이 분류하자면 미들클래스 스포츠 바이크다. 하지만 두루두루 활용해 본 결과 쓸모가 무척 많은 모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초심자도 즐겁게, 베테랑도 즐겁게 탈 수 있는 ‘경량 스포츠 투어링 모터사이클‘로 정의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꼭 정의대로 맞추어 탈 필요도 없다. 어떻게 써먹느냐는 라이더의 권한이다. 말 그대로 팔방미인이나 다름없다. 퇴근길 저녁식사 후에 간단히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좋고, 어느 정도 장거리 투어링도 소화가 되는 능력을 갖춘 바이크다.
혼다가 500 클래스 라인을 스포츠(CBR500R), 네이키드(CB500S), 듀얼퍼포즈(CB500X)로 굳이 나눈 이유가 뭘까? 같은 섀시와 엔진 등 완전히 동일한 플랫폼을 가진 이들은 라이딩 포지션 설정과 엔진 및 서스펜션 세팅력에 따라 모터사이클이 얼마나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 성능은 큰 차이가 없다. 달리 말하면, 500 클래스가 비록 세 종류로 구분됐긴 했지만 그 중 하나로 나머지 두 영역을 넘나들더라도 충분히 메카니즘적으로 받아줄 여력이 된다는 의미다. 그만큼 어느 모델을 선택하더라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선택의 입장에서 가장 큰 변수는 외관 스타일과 포지션의 차이일 것이다.
혼다는 500 클래스를 통해, 베이스가 훌륭한 모터사이클로 입맛 따라 즐길 여지를 충분히 두고 선택권한을 소비자에게 떠맡겼다. CBR500R은 세 가지 성향 중 스포츠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1,000만 원 대 미만의 모터사이클 중 이만한 범용성과 퍼포먼스를 가진 모터사이클은 현재로써 유일무이하다. 소비자의 날카로운 판단력이 필요한 때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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