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B1100EX, ‘더 모터사이클‘ 우리가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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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클래식’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요즘이다. 우리말로 복고풍이라는 의미인데, 바꿔 말하면 옛 스타일을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CB1100은 몇 년 전 우리에게 소개된 적 있다. 안타깝게도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모터사이클의 원조 형태를 그대로 갖춘 CB1100은 혼다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CB750의 후계이기도 하다.
혼다에게 있어 CB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혼다가 곧 CB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일제는 4기통을 잘 만든다는 공식을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주입시킨 것도 혼다의 CB 시리즈다. 물론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도 엔진 개발 기술력이라면 세계 으뜸이지만 혼다 CB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CB는 혼다의 대표적인 병렬 4기통 라인이자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향취가 그대로 담긴 혼다 모터사이클의 표준과도 같다. 그래서 CB시리즈 중 가장 최근 공개된 CB1100은 공개 전부터 큰 화제가 되어왔다. 이번에 시승한 CB1100EX는 공랭 4기통 엔진을 필두로 모터사이클이 원래 어떤 물건이었는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CB1100과 EX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EX의 경우 기본형에서 좀 더 클래시컬한 면모를 추구했다고 보면 간단하다.
CB1100EX. 혼다코리아에서 이 모델을 들여오기로 한 것은 아주 잘 한일이다. 왜냐하면 상품적인 가치 외에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징성 높은 혼다의 CB1100EX의 큰 의미는 특히 심장, 엔진에서 비롯된다.
공랭식 병렬 4기통 엔진은 현대의 모터사이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같은 조건의 수랭식 엔진에 비하면 무게도 무겁고 파워도 떨어진다. 연료 효율도 별로다.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B1100EX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얼핏 보면 그냥 옛 바이크처럼 보인다. 너무 평범하다. 하지만 엔진은...
초기형 모터사이클의 본질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다가 최근 들어 가장 자부심을 높게 가지는 모델일 거다. 겉으로 보기에 CB1100EX는 구닥다리 중 구닥다리다. 원형 헤드라이트에는 아무런 기교가 없다. 심지어 125cc급 스쿠터도 흔히 장비하는 LED 포지셔닝 램프같은 것도 없다. 헤드라이트 아래로는 경적을 울리는 혼이 두 개 연달아 달려있다.
▶ 냉각핀을 이렇게 얇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다.
그 아래를 살펴보면 지극히 평범한 형태의 정립식 포크, 그리고 브레이크 캘리퍼가 보이는데 이곳에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휠은 와이어 스포크로 역시 복고풍. 시선을 애써 외면했지만 실버 컬러 엔진은 존재감에 가슴이 쿵쿵 두근거린다. 공랭 엔진에 달린 촘촘한 두께의 냉각핀은 주행풍을 맞딱드려 엔진을 서서히 냉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엔진이라는 밋밋한 육면체 덩어리가 공기에 최대한 노출되는 면적을 넓히기 위해 마치 머리빗같은 냉각핀이라는 게 필요한 셈이다.
▶ 프레임, 서스펜션 역시 고전적이다.
프레임은 엔진을 위에서 잡아들고 있는 형태의 크레들 프레임이다. 파이프 강관을 소재로 오래 전부터 가장 즐겨 썼던 모터사이클용 섀시의 기본이다. 리어 스윙암에는 듀얼 서스펜션이 달려있다. 이 역시 고전적인 방식으로 동승자나 화물을 추가로 실었을 때 하중에 견디기 쉽지만 무게가 무거워 최근에는 성능 좋은 한 개의 쇽 옵저버를 쓴다.
▶ 기어 포지션 램프, 유류계 등이 표시되는 디지털 패널을 중심으로 양 쪽에 기본적인 속도계와 엔진회전계가 있다.
지금까지 쭉 훑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냥 옛날 형태의 모터사이클이다. 혼다는 왜 이런 물건을 2015년에 내놓은 걸까? 시동을 걸고 엔진을 깨우는 순간 물음표가 조금씩 사라진다. CB의 매력은 바로 엔진에 있다. 엔진은 사람으로 따지면 심장이다. 심장없이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없듯, 엔진없이 달릴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없다.
▶ 공회전은 1,000rpm 전후다. 조용하지만 중저음의 존재감이 귀를 가득 메운다.
공회전은 1,000rpm에서 왔다갔다 한다. 리터급을 넘는 배기량의 공랭 4기통 엔진의 존재감은 생김새뿐 아니라 음색에도 묻어난다. 양감이 풍부한 공랭 4기통 엔진 특유의 풍부한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마음까지 푸근해 지는 느낌이다. 스로틀을 쥐고 회전을 슬쩍 올려보면 엔진회전계 바늘이 묵직하게 따라 올라온다. 말로 설명하자면 거대한 기계를 손가락 하나로 좌지우지하는 느낌이랄까. ‘조용한 엔진 소리 하나로 압도하다니...’ 형용할 수 없는 지배감에 실웃음이 새어나온다.
▶ 운전 자세도 무척 ‘표준’스럽다. 여유롭게 주변 풍광을 살피기도 좋다.
운전 자세는 지극히 평범하다. 말하자면 발을 슬쩍 올리면 그냥 거기에 스텝이 있고, 팔을 슬쩍 뻗으면 거기에 핸들이 있다. 어떠한 연출도 없다. ‘다른거 생각 말고 편안하게 엔진을 만끽하라’는 무언의 신호같기도 하다. 1단을 철컥, 기어를 내리고 클러치를 붙이면 스로틀을 건드리지 않고도 나아간다. 1단은 물론 2단 까지도 아이들링 토크가 상당하다. 흡사 골드윙 F6C에서 느꼈던 6기통 엔진의 부드럽고도 묵직한 토크와 닮았다.
▶ 가속감은 충분하고, 토크 특성은 직선적이다. 어느 순간 파워밴드가 확 터진다거나 파워 분출 시점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전혀 없다. 개발시 최대한 순하게 다듬었다는 이야기다.
1단에서 풀 스로틀 하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보통은 시승기에서 이런 표현을 하면 ‘넘치는 토크와 출력이 어쩌고...’하지만 CB1100EX은 좀 다른 관점에서의 신세계다. 묵직했던 바늘이 단번에 레드존까지 솟구치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색을 토해낸다. 2단을 넣으면 마치 대배기량 머슬카와 같은 느낌으로 폭발적으로 가속한다. 그런데 그런 쾌감에 휩싸인 채로도 항상 통제 아래 있는 기분이다. 가슴과 귀가 행복감에 넘친다. 나만을 위한 오케스트라 악단이 오른손의 지휘에 따라 연주하는 기분이랄까.
▶ 원한다면 스포츠 라이딩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주요 파워는 약 2,000rpm부터 솟구친다. 그런데 무척 부드럽고도 끈기있는 토크 질감이라 스로틀을 슬쩍 풀어도 힘이 고스란히 유지된다. 이 점이 시내 주행에서 무척 즐겁다. 속도 조절하기가 무척 편하고 언제든 아무 때나 부드럽고도 힘있게 가속할 수 있다. 약 5,000rpm부터는 4기통다운 맹렬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토크는 무척 일관되어 있다. 일정한 비율로 파워가 더해지는 느낌이어서 제어하기가 무척 좋다.
‘오버 리터급 4기통 엔진이라, 레드존으로 계속 돌리면 진동으로 불쾌하지 않을까?’... 아니다. 다리 사이에서 잘게 진동하며 포효하는 엔진은 운전자로 하여금 기묘한 지배욕에 휩싸이게 한다. 바람과 싸워 이기지 못하는 내 자신에 괴로울 뿐 엔진은 ‘제로부터 리미트’까지 한 눈금도 버릴 곳이 없다. 정말 잘 만든 엔진이다. 엔진만 따로 떼어내서 소유하고 싶을 정도다.
다만 섀시는 엔진의 위대함에 못 미친다. 아무래도 현대적인 구성은 아니기 때문인데, 서스펜션의 경우 트위스트 코너에서 허약한 면모를 지울 수 없다. 고속 코너링에서 앞 뒤 서스펜션이 출렁 거리는 틈을 타 타이어도 허덕이기 일쑤다. 브레이킹은 혼다다운 일관성을 보여 다행이다.
고속 와인딩 로드에서 다소 실망했지만 좁은 커브가 끝없이 이어지는 비탈길에서는 다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무게감이 정확히 노면 바로 위에 깔려, 흡사 자기부상열차같은 느낌이 든다. 원하는 스티어링의 입력만큼 정확히 움직인다. 무게가 2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데, 이를 고스란히 안정감으로 바꿔놨다. 말랑한 서스펜션도 이제야 빛난다. 레일을 타고 달리는 머슬카같다.
ABS는 제동장치에 기본으로 달려있는데 이런 데일리 바이크 특성을 가진 모델일수록 효과가 좋다. 일상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즐거운 라이딩을 방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택시, 아직 신호를 채 못 건넌 보행자, 건너편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꼬리를 물며 급가속하는 승용차...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경험하는 변수들에 좀 더 침착해 질 수 있다.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좋은 보험이 ABS다.
▶ 시트는 무척 푹신하고 질감도 뛰어나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괜찮다.
헤드라이트는 전형적인 원형 할로겐 램프를 달았지만 광량은 맑고 깨끗하다. 테일램프와 방향지시등 모두 할로겐 타입이다. 등화류에 LED는 한 군데도 없다. 이런 점이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오리지널 CB라면 이해된다. 원래 이 맛에 타는 바이크다. 시트는 봉제가 잘된 소위 ‘거북이 등’모양으로 쇼파같이 푹신하다. 발 착지성을 높이고자 경사면을 만드는 일 없이 평평한 타입이라 하루 종일 타고 달려도 엉덩이가 한결같이 편하다.
▶ CB1100EX는 시종일관 긴장감 없이 ‘즐기게’ 해준다.
내리고 밀 때는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진다. 그제야 비로소 ‘아, 내가 오버리터 바이크를 몰고 있었군’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무게를 출발부터 깃털같이 밀어내는 토크라니’,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평평하고 푹신한 시트덕에 동승자도 즐겁다. 운전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스쿠터 타듯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달릴 수 있다. 원한다면 운전은 바이크가 해준다. 운전자는 거들뿐이다. 하지만 달리기 원한다면 섭섭하지 않을만큼 달리게 해준다. 바람을 즐기게 하는 것이 CB의 엔지니어링이다.
CB1100EX는 기존 5단이었던 기어박스를 6단으로 교체, 오버드라이브를 추가했다. 6단으로 국도 최고 속도인 시속 80킬로미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 2,000rpm만 유지하면 된다. 이 정도면 공회전보다 약간 높은 수준. 물 흐르듯 달리면서 주변 경치 구경하기 딱 좋다. 진동도 없고 엔진 브레이크로 인한 토크 백도 없다. 추가된 6단은 철저히 ‘유유자적’ 투어링 족을 위한 기어다.
▶ 엔진의 조형미는 직접 보면 더하다. 쉽게 말해 ‘엔진밖에’ 안 보인다.
한 켠에 CB1100EX를 세워놓고 바라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정말 모터사이클답게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왔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는다. 연출 이미지에 길들여졌던 눈을 정화시킨다. 간혹 화장기 없는 수수한 외모로 매력을 내뿜는 사람이 있다. 말수가 적지만 한결같은 강직함으로 주변의 신뢰를 모으는 사람. 모터사이클에 대입하기는 좀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비슷하다.
공랭 4기통 엔진을 단 모터사이클을 ‘기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 ‘모터사이클이라는 건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면 CB1100EX를 내어오고 싶다. 그리고 꼭 한번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
임성진 j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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