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스크램블러, 두카티의 새로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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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두카티를 비롯한 이탈리안 모터사이클에 대해 선망을 갖고 있다. 이유는 뭘까? 이탈리안 디자인에서 오는 매혹적인 울림 때문이다. 두카티는 모터사이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꼽혀왔으며 마시모 탐브리니 등 거장 디자이너의 지휘아래 단 한 번도 디자인에 대한 명성을 잃은 적 없다.
두카티에 또 한 가지 의미가 있다면 고성능 레이싱 이미지다. 매혹적인 디자인만으로 모터사이클 제조사가 이만큼 발전할 수는 없다. 당연히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수준 높은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레이싱으로 성능을 차곡차곡 쌓아 온 두카티는 브랜드 역사 자체가 곧 레이싱 경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성능에 집착해 온 메이커다.
그런 두카티가 최근 편안한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편안함’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두카티 입장이라 아직까지도 시뻘건 이탈리안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이미지를 지우기는 어렵다. 라이딩 포지션을 순화해 아무리 편한 자세로 라이딩 하더라도 라이더가 주체가 되는 적극적인 실력을 요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스크램블러를 리디자인한 줄리앙의 스케치 시연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생겼다. 이번 등장한 스크램블러가 바로 주인공이다. 사실 스크램블러는 신인이 아니다. 1962년 생산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구형 모델을 베이스로 복각한 것이다. 현대적인 섀시와 엔진, 그리고 산뜻한 컬러와 스타일을 더한 리메이킹 모델이다.
▶ 시승기자마다 지급된 아이템들. 노란색 비치 슬리퍼가 스크램블러 문화를 말한다.
두카티는 아시아 태평양권 국가를 대상으로 프레스 테스트 라이딩을 진행했다. 태국은 따뜻한 기후조건으로 스크램블러를 체험하기 적합했다. 3일 일정으로 간소화 된 이번 프레스 테스트 라이딩 행사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코스를 혼합한 루트 구성으로 컨트리 라이딩을 테마로 한 스크램블러를 맛보기 적격인 환경이었다.
▶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시아 퍼시픽 프레스 테스트 현장
프레스 테스트 이전 스크램블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있었다. 이 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크램블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자유를 상징하는 히피문화를 꽤 닮아있는 스크램블러는 포장도로나 비포장도로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라이딩을 추구한다.
다양한 액세서리와 서브 파츠를 이용한 변신도 매력이 넘친다. 수십 수백 가지로 조합되는 다양한 스크램블러 모습은 보는 이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기본형은 아이콘, 어반 엔듀로, 클래식, 풀 스로틀 단 4가지 뿐 이지만 서로의 파츠를 마음대로 섞어 나만의 바이크를 손쉽게 구성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다양한 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프리뷰에서 짚어 본 바 있으니 넘어간다. 시승 일정 간 우리가 타게 된 모델은 기본형인 ‘아이콘’. 옐로우 컬러로 페인팅 된 시승차는 생기발랄한 스크램블러 이미지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둥그런 헤드라이트는 LED 데일라이트를 포함해 독특한 존재감을 내뿜는데, 단순한 클래식을 넘어선 네오 클래식 디자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높고 넓은 핸들은 최근 등장하는 일반적인 모터사이클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노면 상황을 가리지 않고 보다 손쉬운 조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핸들이 넓고 높으면 운전자의 체형을 막론하고 뒷바퀴가 미끄러진다던가 차체가 균형을 잃는 주행 상황에서도 손쉽게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클래식’ 모델은 격자형으로 봉합된 복고풍 시트, 와이어 스포크 휠이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널찍하고 펑퍼짐한 모양의 시트. 시트는 착좌감이 훌륭하고 폭이 넓어 오랜 시간 라이딩하기에도 버겁지 않다. 특히 2기통 엔진을 장시간 느끼면 엉덩이가 저릴만도 한데 스크램블러는 이런 점까지 고려한 듯 피로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점도 놀랍다.
▶ 잠김 방지 브레이크(ABS)는 기본채용으로 낙엽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설 수 있다.
엔진은 과거 몬스터 796이 사용한 공랭 L트윈 803cc다. 이 엔진은 몬스터에 사용했을 경우 스프린터다운 가속감이 일품이었는데 스크램블러에 이식하면서 어떻게 바뀌었을지가 관건이다. 1단부터 다양한 기어를 사용하며 서서히 가속하면 아이들링 근처인 1,000rpm 부근에서 슬쩍 툴툴대는 기색이 보이다가 약 2,000rpm부터 5,000rpm 사이에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자면, 적절한 고동감과 상쾌한 가속감이 기막히게 어우러진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진동은 기존 몬스터796에 비해서 조금 더 커진 느낌으로, 빅 트윈 엔진다운 전형적인 맥박이 느껴져 기분 좋다. 하지만 이 맥박에 비해 가속이 더디면 일순간 짜증이 나고 금방 지치기 마련인데 스크램블러의 경우 가속감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다는 것. 이 영역대에서는 스로틀을 끝까지 돌리건, 아니면 느긋한 마음으로 감아나가건 관계없이 맛깔지다.
그럼 몬스터796의 백미였던 중-고회전 영역의 매끄럽고 시원스러웠던 가속감은 그대로일까? 피크 토크를 보이는 6,000rpm~8,000rpm까지의 영역은 아무래도 몬스터와 다른 느낌이다. 맹렬하게 가속하기 보다는 점차 토크가 줄어드는 느낌으로 엔진이 점차 거칠게 돌기 시작한다. 한계치까지 돌리며 엔진을 혹사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즐거운 영역대는 중-저속을 아우르는 2,000~5,000rpm으로 판단한다. 관계자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윗 스팟’이라 부르는 이 영역이야말로 비록 같은 엔진을 썼지만 스프린터로 분류되는 몬스터796 특성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 마케팅 담당인 마리오가 스크램블러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엔진은 심장이지만 스크램블러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803cc 공랭 엔진은 쓰임새가 워낙 좋아 스크램블러에 활용된 것 뿐이지 기본적인 스크램블러의 개성은 자유롭고 꾸밈없는 라이딩 스타일에서 나온다. 스크램블러는 앞 18인치, 뒤 17인치의 래디얼 타이어를 기본으로 달린다. 즉 비포장도로의 불규칙한 면을 밟아도 앞 바퀴가 좀처럼 방향을 잃는 일이 없다. 타이어 패턴은 배수가 잘되며 세미 오프로드 정도는 소화할 만한 큼직한 형상이다. 마른 온로드에서도 접지력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트랙 테스트도 당당히 마쳤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 다양한 스크램블러 관련 어패럴과 액세서리들이 널려있다.
스티어링은 무척 가벼운 특성을 가졌다. 애초에 고속을 질주하는 모델이 아니다보니 충분히 이해가는 세팅이다. 저속에서 컨트롤이 아주 쉽고 특히 노면이 불규칙한 코스에서도 자신감있게 가속하기가 좋다. 태국은 당연하겠지만 태국인이 아닌 이상 모든 도로가 초행길이다. 그럼에도 여성라이더를 포함한 모든 시승기자들이 뒤처짐없이 리더를 따라 쉼없이 비탈길이나 좁고 험한 급커브를 휙휙 주파할 수 있던 건 스크램블러의 가볍고 정확한 핸들링 덕분이다.
▶ ‘풀 스로틀’은 테르미뇨니 배기시스템이 기본채용되어 있어 고성능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서스펜션은 앞 150밀리미터로 작동하며 수치상 평이한 수준이다. 일반적인 네이키드 바이크 타입정도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스포츠색을 띄는 두카티로써는 상당히 소프트한 특성과 더불어 부드러운 작동감을 줘 놀라웠다. 두카티가 이토록 섀시 세팅을 부드럽게 다듬어 놓다니, 작정하고 대중화에 힘을 쏟을 생각인가보다, 하고 느꼈다. 이 정도면 기본 채용된 잠김방지 브레이크(ABS)와 더불어 초심자라도 위험한 찰나 부담없이 풀 브레이킹 할 수 있겠다. 뒤 서스펜션도 적당히 푹신한 감각이다. 부드러운 쿠션을 가진 시트 속 재질도 안락한 승차감에 큰 도움이 됐다.
파워는 일찍이 언급했듯 초중반 회전역대에서 두툼하고도 맛깔나는 토크가 솟아오르다가 고회전 영역대에 들어서면서 토크가 줄어드는 타입이다. 쉽게 말해 순간 토크를 즐기며 ‘투투툭’하고 튀어나가듯 가속하는 재미가 크다. 상체가 크게 일어선 운전 자세는 주행풍을 상반신 전반에 있어 맞딱드릴 수밖에 없다. 즉 느긋하게 시속 80킬로미터 전후로 달리는 것이 가장 즐거운 모터사이클이다.
▶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점이 스크램블러의 가장 큰 매력
시승 중 이따금씩 토크를 확인하고자 살짝 굽이친 도로에서 풀 스로틀 하며 가속해 나가면 리어휠이 옆으로 슥 빠지면서 균형을 잃을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사태를 수습하면서 콧노래 부를 수 있던 이유는 확실하게 하체 중심으로 컨트롤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고전적인 운전 자세 설정 덕이다. 이 자세를 연출하기 위해 풋 스텝의 위치, 엉덩이와 무릎이 닿는 시트 면의 위치, 그리고 힘이 전혀 실리지 않으면서도 위급할 시 조작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핸들의 위치가 절묘하다. 다행인 것은 아시아인 특성상 키가 작고 팔 다리가 짧더라도 포지션에 큰 변화가 없게 되어있다는 점. 이 점은 추후 국내에서 스크램블러를 만나볼 때 많은 여성라이더에게 사랑받을만한 부분임이 확실하다.
두카티는 스크램블러 담당 디자이너를 불러 기자들 앞에서 스케치를 시연하기도 했다. 또 한 켠에서는 스크램블러가 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여지와, 운전자를 꾸밀만한 재킷, 벨트, 시계 등 다양한 소품들을 소개했다. 그간 두카티가 가졌던 고자세와는 다른 양상이 흥미로웠다. ‘프로페셔널’, ‘하이퍼포먼스’, ‘스파르탄’, ‘컴페티션’으로 시작해 ‘레이스’로 귀결되는 그동안의 두카티와는 방향성을 완벽히 달리 잡았다는 것이다.
▶ 마지막 날 밤 비치 파티에서 목청을 높인 밴드. 스크램블러는 야외 파티와 잘 어울린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는 ‘즐거움’, ‘컨트리’, ‘행복’,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든지’라는 부드럽고 아마추어 친화적인 아이콘들로 가득 메웠다. 아시아 시장에 큰 힘을 두고 있는 스크램블러가 한국 시장에 들어설 때 어떤 발걸음이 될지, 진지한 이미지 대신 위트 넘치는 두카티를 받아들이는 우리 소비자들의 표정이 어떨지 어서 뚜껑을 열어보고 싶다.
글
임성진 j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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