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YZF-R1, 컨트롤 가능한 200마력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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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하가 최근 줄곧 상품성 높은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활용성 높은 스트리트 바이크 MT시리즈는 물론 일상영역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커뮤터 트리시티까지. 하지만 마지막 보루는 따로 있다. 2015년, 야마하의 얼굴이자 정교한 일본 슈퍼바이크의 대명사 YZF-R1이 완벽히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YZF-R1은 17년 전인 1998년 전 세계에 판매되며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대표 슈퍼바이크다. 1리터 양산 슈퍼바이크 클래스를 창시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클래스를 대표하는 경량 하이파워 머신 그 자체로 평가받았다. 이를 필두로 다양한 브랜드가 YZF-R1을 경쟁삼는 바람에 전쟁같은 슈퍼바이크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2004년 YZF-R1이 파워 웨이트 레이쇼(마력당 중량비) 1:1을 돌파하던 즈음 슈퍼바이크 경쟁이 시들해져갔다. 당시만 해도 170마력 이상을 당연하게 내뿜던 엔진을 일반 도로에서 조련하라는 것은 일반 라이더들에게 강요와도 같았다. 익숙한 라이딩 포지션과 적당히 강한 파워를 가진 슈퍼 네이키드 바이크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원인을 제공했을 뿐이다. 그리고 곧 이어 플레이 그라운드를 대폭 확장할 수 있는 어드벤처 바이크가 유행을 탔다.
그런 흐름을 되짚어보면 이번 YZF-R1의 출시는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기념비적인 200마력시대를 열은 것은 물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야마하가 이번 풀 체인지에 얼마나 진중한 마음으로 임했는지 알만한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YZF-R1은 스탠다드 버전 YZF-R1과 고급 사양 YZF-R1M으로 나뉜다. 우리가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스탠다드 YZF-R1이다. 카본 바디워크와 경량을 위한 일부 파츠가 제외되긴 했지만 핵심은 R1M과 다르지 않다. 가격차 면에서 메리트도 크다.
겉과 속 모두 GP머신 빼닮은 YZF-R1
YZF-R1은 생김새부터 완전히 변모됐다. 연일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는 야마하 MotoGP 머신 YZR-M1과 빼다 박은 모양새다. 공도용 바이크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자리에 헤드라이트 대신 에어 인테이크가 커다랗게 자리 잡은 것만 봐도 고성능 이미지를 가늠할 수 있다. 평소 GP 팬이라면 생김새에 이미 마음을 빼앗길 만도 하다.
▶ LED 헤드램프는 프론트 페어링 아래 숨어있다.
헤드라이트는 보일 듯 말듯 한 위치에 LED로 마련되어 있으며 상향/하향이 별개로 작동한다. 날카로운 눈매처럼 번뜩이는 얇고 긴 LED포지션 램프는 멀리서도 봐도 R1이라는 존재감을 확실히 해준다. 미끈하게 빠진 차체는 두툼한 크로스플레인 4기통 엔진을 지나 수평에 가깝게 뻗어있는 리어 섹션으로 마무리된다. 리어 페어링 역시 크게 뚫려있는 구조를 보면 공기역학에 크게 중점뒀음을 알 수 있다.
엔진은 998cc다. 병렬 4기통 엔진이지만 흔치 않은 필링을 가진 진짜 GP혈통이다. 시동을 걸면 낮은 휘파람소리와 함께 잔잔한 맥동이 느껴지는데, 크로스 플레인 크랭크샤프트 배치로 여타 병렬 4기통 슈퍼바이크와 차별화를 뒀기 때문이다. 스로틀 리스폰스는 무척 가볍다. ‘가볍고 경쾌하다’는 느낌은 전혀 1리터에 육박하는 대형 엔진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좀 과장하면 스트로크 125cc 엔진과도 비슷하다.
파워는 알다시피 200마력. 양산 바이크가 200마력이라는 건 축복이다. 게다가 중량은 199킬로그램으로 1:1 비율도 깨버렸다. 1단에서 서서히 클러치를 붙이자 1,200rpm 내외로 움직이던 아이들링에서도 불안감이 없다. 사실 약 5,000rpm까지 워낙 순식간에 바늘이 붙어올라서 확인할 겨를도 없다. 레이싱 스펙과 비슷하게 1단 기어비는 매우 넓은 편이라 레드존 근처인 14,000rpm까지 올리면 시속 160킬로미터까지도 눈 깜짝할 새에 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다는 것.
보통 1단에서 회전수를 끌어내면 엔진이 힘들게 울부짖는다.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1단 기어를 출발시에만 쓰고 곧바로 2단, 3단을 넣는다. 1단부터 이렇게 부담없는 주행감을 주는 것은 오랜만이다. 과거 호몰로게이션 모델이 이런 느낌이었다. 2단 기어에서 풀 스로틀하면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기는 것은 우습다. 가장 파워가 정확하게 나오는 7,000~12,000rpm 사이에서 변속하며 와인딩 코스를 달리기에 2단이면 충분할 정도로 파워가 넘친다.
▶ 리어 시트아래 수납된 기본 공구로 서스펜션 세팅을 바꿀 수 있다.
6단까지 모든 기어를 사용해 봐도 기민한 엔진 반응은 변함이 없다. 중량이 워낙 가볍고 엔진 회전 관성이 극도로 억제됐기 때문이다. 정확히 운전자가 의도한 만큼, 의도한 순간만 정확한 파워를 내준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관찰하는 기분까지 든다. 섀시는 스트리트에서 분에 넘칠 만큼 단단하다. 서스펜션은 단단한 섀시 세팅을 슬쩍 사용자 친화적으로 걸러준다. 모든 것이 컨트롤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200마력자리 머신에서 느껴진다니, ‘아, 이번에야말로 야마하가 일을 제대로 해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200마력을 마음대로? 기술력이 통했다
모든 퍼포먼스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가속력, 브레이킹, 린 컨트롤, 풋 워크... 125cc 내지는 250cc 정도 되는 스포츠 바이크를 타는 기분인데 파워는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200마력을 다루기가 이렇게 쉬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마도 YZF-R1 개발팀은 우리가 200이라는 숫자에 주눅들지 않기를 원한 것 같다. A모드는 종전 (이제는 구형이 되어버린) 2009년형 YZF-R1과 마찬가지로 풀파워 모드다. 과거 ‘날카롭다’고 느꼈던 것이 이제는 좀 더 정돈된 느낌으로 ‘정확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스로틀을 험하게 당겨도 다양한 전자장비가 개입해 최악의 순간 작동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언제 작동했는지 안 했는지 감잡기 어려울 정도로 티를 안낸다는 사실이다. 윌리 컨트롤이 작동하는 것은 느꼈지만 시승하는 노면 컨디션이 좋아서 인지 트랙션 컨트롤도 작동을 눈치채기 어려웠다. 트랙에서 한계까지 몰아붙일라면 모를까, 순정 타이어 디아블로 슈퍼코르사는 어떤 린 앵글에도 아스팔트와 딥 키스 중이다. 클러치없이 변속하는 퀵 쉬프트도 낮은 회전영역, 높은 회전영역 가리지 않고 대부분 부드럽게 작동한다.
▶ TFT LCD로 만든 계기반은 각종 전자장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전자장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숨 가쁘게 와인딩을 뛰고 나서야 알았다. 계기반에 다양한 문자들이 와글와글 거리기 때문이다. 급가속에도 차체를 안정시켜주는 윌리 컨트롤, 깊은 와인딩 탈출 가속시 도움이 되는 트랙션 컨트롤, 차체에 내장된 관성장치를 활용한 코너링 ABS 등 다양한 전자장비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쉴새없이 오케스트라를 펼친다.
▶ 버튼 몇 개로 다양한 세팅을 손쉽게 바꾸며 탈 수 있다.
전자장비의 가장 멋진 모습은 깔끔하게 들어왔다 깔끔하게 나가는 것, 다시 말해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고 사라지는 것이 최고다.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열심히 일하는 R1의 전자장비 패키지는 높은 점수를 줘도 좋겠다. 아주 잘 다듬어져 있다. 게다가 모든 세팅값은 버튼을 눌러 간단히 여러 단계로 나누어 적용할 수 있다. A~D모드까지 커스터마이징 세트를 바꿀 수 있다.
▶ 4피스톤 캘리퍼는 린 앵글을 고려한 코너링 ABS 등 관성장치를 활용한 기술과 연동되어 있다.
스티어링은 속도에 무관하게 초기 반응은 무척 예리하고 깊은 뱅킹으로 유지할수록 믿음직하다. 이는 신뢰성 높은 프론트 포크의 역할도 큰 것 같다. 포크는 스트리트용으로 적당한 성격을 가졌는데, 간혹 한계를 넘어 무리한 브레이킹으로 코너에 진입하면 찰떡같은 타이어가 노면을 물고 늘어진다. 서스펜션과 타이어 궁합이 좋다고 느꼈다. 트랙에서 달리는 R1M은 어떨지 상상이 간다.
프론트 브레이크는 4피스톤으로 브레이크 압력이 계기반에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가만히 서있을 때도 표시되는 그래픽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요소가 분명하지만 달리는 중 굳이 시선을 내려 그래프를 체크한 적은 없었다. 차가 앞/뒤로 기울며 브레이킹/가속 포스를 알려주는 그래프 또한 재미있는 요소이나 마찬가지로 주행 중 굳이 들여다본 적은 없다.
전통 레이서 취향 따른 슈퍼바이크
연료탱크가 앞/뒤로 긴 YZF-R1은 적극적으로 달리기 위한 레이싱 포지션을 추구했다. 최근의 다른 슈퍼바이크들처럼 핸들과 시트 포지션이 가깝게 설계해 여유 있는 포지션을 추구한 것과는 다르다. 200마력을 쥐락펴락 하려면 강력한 가/감속에 견디기 위해서라도 이 쪽이 낫다. 한번 올라앉아보면 여타 슈퍼바이크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거다.
엔진은 여전히 트랙션 필링이 우수한 크로스플레인 크랭크샤프트를 활용했다. 2,000~5,000rpm까지는 600cc급 토크를 보이다가 타코미터가 녹색으로 바뀌면서 슬슬 열을 올린다. 그대로 풀 스로틀을 유지하면 14,000rpm까지 순식간에 오르는데 사실 그 과정이 무척 드라마틱하다.
모아뒀던 힘을 7,000rpm이상에서 그야말로 소화전 물줄기처럼 뿜어내기 때문이다. ‘쾅’하고 순간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회전이 더해질수록 더 가볍게 가속하는 느낌이다. 낮은 회전부터 서서히 힘을 모았다가 2차 곡선 그래프처럼 고회전 영역에서 빨아들이듯 200마력을 뽑아낸다. 이런 느낌은 가속하는 자체로도 충분히 운전자를 즐겁게 하는 요소다.
▶ 기본적인 트립 미터, 연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메뉴 컨트롤러는 오른손으로 조작한다.
전자제어 스로틀(YCC-T)을 기본으로 하는 엔진덕분에 오랜 시간 와인딩을 즐겨도 스트레스가 없다. 타는 순간부터 시트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즐겁다. 전작에서 다소 묵직하다고 느꼈던 풋워크도 완전히 바뀌었고, 퍼져있던 질량감도 더욱 응축됐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 200마력 머신을 타고 있다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 타이어는 피렐리 디아블로 슈퍼코르사로 마른 노면에서 접지력이 매우 좋다.
야마하는 YZF-R1 신형 모델을 두고 MotoGP 머신을 스트리트로 옮겨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확인해 본 결과 생김새만 언뜻 레이시하게 포장한 상품이 아니다. 진짜 트랙 출신 머신이다. 많은 슈퍼바이크들이 ‘트랙에서 탄생한’, ‘트랙을 지배할’, ‘트랙이 고향인’ 수식어를 즐겨 쓰지만 이만큼 수식어에 가깝게 도달한 양산차를 본적이 없다.
야마하는 이번 R1을 통해 ‘타기 쉬운 것이 빠른 것‘이라는 기본 명제를 그 어떤 과거의 R1 보다도 잘 표현해냈다. 최근 높은 GP성적과 더불어 마케팅도 잘하고 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하기 마련인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기대를 넘어 정교하고 가벼우며 단단했다. 극단적인 스포츠 장르인 경우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정도면 허리 숙인 스포츠 바이크를 떠난 마니아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충분하다. 상향평준화 된 리터클래스 스포츠 바이크 시장에서 이제 더 이상 발전할 것도 없겠다 싶었는데, 맘 편히 즐길 수 있는 200마력짜리 스포츠바이크라니... 야마하가 기술로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글
임성진 j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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