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편리한 스쿠터, 혼다 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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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벤리의 어원은 일본어로 ‘편리하다’는 의미다. 며칠간 타보니 그야말로 아주 적절한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바이크라면 뭘 해도 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용하다. 일단은 1인승 형식이 기본이므로 비즈니스 스쿠터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타면 탈수록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너무나 타기 ‘편리하게’ 설계 된 덕이다.
몇 해 전 신형 벤리가 국내에 출시됐을 때 귀여운 외모와 다재다능함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을 보내왔다. 그리고 올해 다시 한 번 단점을 개선한 신형 모델이 나온 것이다. 이 모델은 이미 숙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무얼 더 업그레이드 했을까 염려됐지만 그 와중에서도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시동을 켜보니 무척 절제된 엔진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기자가 최근 경험한 소형 스쿠터 클래스 중에서 가장 정숙하다. 시동을 건 순간 ‘아! 혼다였지!’싶을 만큼 감탄이 든다. 사이드 스탠드를 내린 상태로도 시동은 걸린다. 하지만 스로틀을 조작해도 전진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혼다코리아는 사이드 스탠드 인히비터를 개선해 더 부드럽게 출발할 수 있게 보완했다고 말했다.
벤리는 사이드 스탠드를 걷어 올리고 스로틀을 감아 돌리자 즉각 힘차게 가속한다. 초반의 토크가 상당하다. 가벼운 차량 무게 덕도 있겠지만 예상보다도 더 상쾌하게 출발한다. 그대로 쭉 가속해 나가면 시속 80킬로미터까지 쏜살같다. 진동이나 소음이 완전히 억제되어 너무 평온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시속 90킬로미터 이상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아무튼 시속 100킬로미터 가까이 달릴 수도 있다.
작고 가벼운 차체임에도 안정성은 괜찮다. 짐을 적재하면 더욱 무게감이 더해져 안심될 것 같다. 핸들 조향각도 아주 크고 생각보다 뱅킹 한계도 괜찮다. 스포츠 용도만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충분하고도 남는 민첩한 기동성을 가졌다. 선회 감각은 한결 같이 부드럽고 솔직하다. 앞바퀴의 움직임을 언제나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1인 승차에 그치지 않고, 가지고 있던 각종 물건을 담은 박스나 카메라 가방 등 짐을 캐리어에 실은 상태로 다시 달려봤다. 큰 움직임의 변화는 없었다. 특히 오르막 등판로에서 멈췄다 재출발 할 때도 1인 승차 시에 비해 약간 경쾌한 맛은 감소했지만 힘 있게 출발한다. 토크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이 작은 108cc 엔진으로 이만큼 끈기 있게 토크를 낸다는 것이 놀랍다. 엔진은 경쟁 모델 대비 신뢰가 높은 수랭형 SOHC 단기통 형식이다. 변속기는 내구성 좋은 CVT를 사용했다.
잘 달려주니 잘 서는 것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앞 뒤 브레이크는 의외로 드럼 브레이크다. 최신 모델이라 믿기 어려웠지만 믿고 브레이킹을 강하게 테스트해봤다. 앞/뒤 연동 브레이크 타입으로 뒷 브레이크를 작동하면 앞 브레이크도 동시에 물린다. 단, 앞 브레이크만 작동하면 독립으로 쓸 수 있다. 연동 타입 덕에 제동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속하고 멈춰 서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는 짐을 적재해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반응의 디스크 로터 대신 드럼 타입이 가진 부드러운 제동감이 오히려 잘 어울린다. 절대 제동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고, 단지 감각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려와 달리 이 점에서도 합격점이다. 타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유지는 훨씬 간편하다. 휠에는 브레이크 장력을 간단히 손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레버가 있다. 공구도 필요 없다. 이런 섬세한 배려에서 탄성이 나온다.
적재 화물은 60킬로그램까지 실을 수 있다고 한다. 데크는 낮은 높이라 짐을 오르내리기 수월했다. 이전 버전의 벤리 보다도 짐 고리가 많아져 짐을 고정하기가 수월해 진점도 좋다. 리터 데크는 무척 큰 사이즈라 어지간한 대형 짐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마음이 다 든든해지는 사이즈를 자랑한다.
소형 스쿠터라면 연료 효율을 챙겨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벤리는 시승 내내 ‘연료 게이지가 고장난 것 같은’ 연비를 증명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너무 연료 소모가 적어서 계기반의 연료 눈금으로 봐서는 티가 안날 정도라는 것이다. 시내에서 줄곧 테스트한 좋지 않은 도심 주행 상황의 반복이었는데도 출발당시 주유한 5천원어치 휘발유를 2박 3일간 소진하기는 무리였다. 효율 좋은 수랭 엔진과 숙성된 혼다 엔지니어링의 결과였다. 게다가 연료탱크는 차체 사이즈대비 10리터로 엄청나게 크다. 공인 연비인 53km/L대로라면 한번 주유로 서울에서 부산도 갈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시트높이는 710mm로 전혀 걱정할 필요없을 만큼 낮다. 키 작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걱정없이 탈 수 있을만한 높이다. 브레이크 레버에는 프론트/리어 모두 파킹 브레이크로 쓸 수 있는 고리가 마련돼 있다. 브레이크를 잡고 슬쩍 후크를 내리면 그대로 고정되어 차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오르막이나 내리막 경사로에 주차할 때 아주 유용하다. 거창하게 파킹 브레이크라 하기 어려울 만큼 간소한 장비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언덕에 주차할 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정차 시에 양 발이 땅에 잘 닿도록 플로어패널을 오목하게 파놓은 것은 이번 신형 모델의 변경 점 중 하나다.
재미있는 점은 또 있다. 사이드 미러에 헬멧을 잠시 걸어두거나 지나가는 행인이 툭 치면 각도가 미세하게 달라져 다시 조절하지 않고는 그대로 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벤리의 사이드미러는 이렇게 방향이 달라져도 너트가 풀리지 않는다. 체결부위가 2중으로 처리되어 조작부와 고정부가 별개다. 아무리 미러 방향을 돌리며 조절해도 고정된 미러가 풀일 일이 없게 만들었다. 모터사이클을 한번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다.
메인스탠드는 용접을 보강해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짐을 적재하기 위해 비스듬한 사이드스탠드 보다는 주로 바로 세워지는 메인스탠드를 빈번하게 작동하는 것을 배려해서다. 사이드스탠드는 접지 면적을 수정해 흙 위에서도 노면을 파고들지 않게 했다. 정비성면에서도 좋다. 플러그 메인터넌스 리드 등 외장 부품 탈착을 용이하게 구성했고, 사이드 스탠드는 탈거 없이 윤활 가능한 구리스 닛플을 달았다. 헤드라이트는 플라스틱 로어 커버 분해로 탈착이 용이한 구조이며, 윙커 내부에는 클리어 벌브를 채용해 긴박할 때 수급이 좀 더 쉽도록 했다.
시승 기간 내내 웃음 짓게 했던 벤리는 온갖 배려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작은 스쿠터로 사람을 감동시키다니, 전혀 기대도 못 했던 알짜배기 시승이었다. 벤리를 타면서 ‘정말 써먹을 데가 많겠구나 싶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동승용 시트가 기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승자용 풋 스텝은 달려있는데 시트는 옵션이다. 수입처 혼다코리아는 필리온 시트에 대해 아직 출시되지 않았지만 조만만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형 벤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승자용 시트를 옵션 장착해 2인승차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벤리의 활용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옵션을 갖추길 바란다. 참고로 시승 사진에 등장한 프론트 바스켓(철제 바구니)은 별도 장착한 파츠다.
판매 색상은 블루/블랙, 화이트/블랙, 화이트/베이지 세 가지다. 우리나라 소비자 가격은 259만원으로 책정됐다.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정말 합리적인 소비가 아닐 수 없다. 잦은 시내 이동이 필요한 개인 사업을 고려하는 사람, 혹은 통근, 통학용으로 ‘편리하고 합리적인’스쿠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벤리를 타보면 자연스레 이동용 스쿠터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
글
임성진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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