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한 컨트리 보이, 야마하 SCR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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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야마하는 일제 4대 브랜드 중에서 가장 시장의 트렌드를 잘 읽고 있는 브랜드라 해도 될 만큼 생기가 넘친다. 특히 작년까지 국내 시장에서도 유례없이 큰 히트를 쳤던 YZF-R3와 MT-03 등 엔트리 클래스 바이크의 흥행에도 이러한 트렌드 읽기가 잘 통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트렌드는 클래식, 그리고 그 중에서도 스크램블러에 상당히 집중되어 있다. 세계 유수의 모터사이클 브랜드에서 스크램블러 스타일의 모델을 쏟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브랜드가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기보다는 기존의 로드스터류를 다시 손봐 일단 디자인 요소를 그럴싸하게 만들고, 흙에서도 어느정도 탈 수 있게 각 파츠의 수치를 조절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런 행태를 보고, ‘기존의 모델을 조금 수정해서 포장해놓고 새로운 것처럼 광고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크램블러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크램블러란 애초에 완전한 오프로드 바이크도, 온로드 바이크도 아니다. 이쪽 저쪽 다 적당히 달릴 수 있는 밍숭맹숭한 바이크다. 어느 한쪽으로 특기가 쏠려있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시선을 달리하면 스크램블러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로드스터(온로드를 달리기 위한 주행성능 중심의 모델)를 기본으로 약간의 손만 봐도 스크램블러처럼 즐길 수 있다. 오르고 내리는 산골에 뛰어다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흙길이나 자갈길 정도를 털털거리며 달리는 것이 스크램블러다. 처음부터 뭔가 전문적이고 진지해보이는 인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기분내키는대로 아무 길이나 달릴 수 있는 점이 유쾌한 스크램블러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각자 브랜드대로 이런 스크램블러의 성격을 해석해 기존의 모델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는데, 야마하는 크루저(스스로 스포츠 헤리티지라고 칭하는)였던 스트리트 바이크 볼트를 기반으로 스크램블러다운 양념을 더해 SCR950을 만들었다.
애초에 크루저가 기본이기에 상당히 길고, 낮다. 그리고 무게도 적지 않게 나간다. 첫인상은 중압감에 ‘이걸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일단 시동을 켜고 달려보기로 했다. 키 온/오프는 다른 미국 태생의 크루저와 마찬가지로 프레임 오른편에 키를 꽂아 돌리는 방식이다. 원래 모델인 볼트와도 같다.
하지만 시트에 앉아보면 볼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단 시트가 높다. 수치상으로는 830mm다. 무게는 252kg으로 엔진헤드가 위로 솟은 V트윈 특유의 중량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일전에 볼트를 타본 느낌대로 온로드를 달려보니 여러 가지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일단 시야가 훨씬 넓고 높다. 착석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핸들은 테이퍼드 타입은 아니지만 충분히 튼튼해 보이는 파이프 구성으로 넓이가 넓고 저속에서도 조향하기가 간편하다. 차체 무게는 무겁지만 바퀴가 구르기만 하면 의외로 가볍게 핸들링할 수 있다. 스텝 위치는 아주 적절하다. 다리가 ‘ㄱ’자로 구부러지며 시트와 스텝에 골고루 무게가 실린다. 아무런 생각없이 달리기 좋은 자세다.
도로에서 기어를 쭉쭉 올리며 가속해보면 생각 외로 속도가 잘 난다는 점이 신기하다. 속도감은 거의 없지만, 순간 토크가 묵직하다. 볼트와도 같은 엔진인 942cc SOHC 공랭 V트윈 방식으로, 1리터에 달하는 2기통이면서도 진동이 크게 억제되어 있다. 디지털 계기반에는 속도만 나타나므로 몇 rpm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출발부터 고르게 토크가 나오다가 금방 최대토크가 나와준다. 크루저식으로 부드럽게 기어를 올리다보면 톱 기어인 5단으로 크루저처럼 달리게 된다.
SCR950은 일반 도로에서 달린다면 거의 크루저같은 느낌으로 여유롭게 순항할 수 있는 바이크다. 자세도 편하고, 시야도 탁 트여있다. 개방감이나 상쾌함은 오히려 착석위치가 낮은 볼트보다도 좋았다. 톱기어로 툴툴거리며 고동감을 즐기는 것도 맛깔스럽다. 시트가 조금 단단하고 가운데가 불룩 솟아있어 착 감기는 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오래탔을 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앞 뒤로 시트가 평평하고 길기 때문에 공격적인, 혹은 여유로운 여러 가지 라이딩 자세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라이딩 포지션의 자유로움은 흙길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서스펜션은 노멀 볼트보다 말랑해지고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오프로드의 울퉁불퉁한 길에서 편안하게 달리기에는 흡수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들고 스탠딩하게 되는데, 스탠딩 포지션이 매우 자연스럽다. 스텝이 핸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고, 연료탱크가 작아 거치적거리는 부분이 거의 없다.
온로드 라이딩을 하면서 니그립할 부위가 적절치 않아 고민했는데, 오프로드 라이딩 시에도 니그립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스텝 위치가 스탠딩에 잘 고려되어 있어 만족스럽다. 엔진, 에어클리너 박스, 배기파이프 등이 상당히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어딘가 지지하기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오프로드 바이크처럼 니그립을 확실히 하고 빠르게 코스를 주파해야 한다는 압박감만 떨쳐버리면 큰 문제가 안된다. 보기보다 막상 타보면 그렇다.
토크가 무척 부드럽게 나오는 것도 맘에 든다. 비로소 흙길을 달리니 온로드에서 조금 밋밋하다고 느낀 출력 부분이 득이 됐다. ‘어슬렁’거리며 달린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SCR950의 흙길 라이딩은 빠르지 않지만 무척 재미있다. 중량이 250kg이 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앞 뒤 타이어가 지그시 눌리며 꿀렁꿀렁 달리는 맛이 묘하다. 대형 SUV로 험로를 슬슬 달리는 기분과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커다란 어드벤처 바이크보다 심리적 안심감이 높은 ‘만만한’ 시트고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앞 뒤 휠에는 모두 ABS장치가 달려있다. 트랙션 컨트롤은 없다. 구동은 볼트와 마찬가지로 벨트드라이브이며 포크도 정립식 그대로다. 여러 구성이 그대로인데도 라이딩 포지션을 바꿔 이렇게 ‘펀(FUN)’한 바이크로 바꿔놨다는 점이 신기하다.
반면 아쉬운 점은 1,430만 원짜리 대형 바이크치고는 각 파츠가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기본 중의 기본 파츠만 들어가 있다. 원하는 대로 바꿔가며 타라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SCR950의 주 시장은 북미다. 부담없이 가지고 놀면서도 한편으로는 원하는 부분을 적당히 고쳐서 취향대로 커스텀하며 타라는 의미가 크다. 물론 우리네 사정처럼 개러지 문화가 없고, 완성된 신차를 구입해 순정 상태 그대로 탈 확률이 무척 높은 경우는 매리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SCR950을 욕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바이크이기 때문이다. 무게가 무거워서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었다. 온로드에서는 여유로운 크루저로, 그리고 비포장로를 달리면 황야의 무법자로 변한다. 몇 번쯤 넘어뜨려도 전혀 부담되지 않을 것 같은 넉넉한 외모에 약간은 투박한 옷차림. 먼지가 익숙한 든든한 컨트리 보이같은 느낌이다.
스크램블러라는 장르에 과하게 쿨한 이미지를 입히기보다는 털털하고 격없는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SCR950. 시장에 수많은 스크램블러가 나와 있어 과열경쟁 양상도 띠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꽤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졌다. 크루저 베이스의 스크램블러라는 점이 가장 독특하다.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매력은 흉내 내기가 어렵다. 화끈함보다 느슨함, 빠릿빠릿함보다 여유를 선택하고자 하는 그에게 추천한다.
글
글 임성진 사진 장낙규, 류신영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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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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